김헌수목사_단장예식은 치유의 목회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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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1-05 14:01 조회3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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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예식은 치유의 목회현장입니다.
성실한 남편의 아내이며 착한 아들 하나를 둔 44살의 젊은 엄마가 삶을 포기했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집안은 물론 교회 성도들까지 엄청난 충격이 되었다. 육신의 아버지가 평소에 딸이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노년의 몸으로 틈틈이 돌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편 역시 회사에 출근을 해도 늘 아내 걱정에 일찍 집으로 퇴근을 하였다. 그리고 소소한 집안일을 챙기며 늘 아내 곁에서 지켜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간절한 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곁을 떠났다. 그동안의 모든 수고와 애씀으로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기에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 아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 안타까움은 더했다.
또 하나 23살의 젊은 청년이 세상을 등지고 인생을 스스로 버렸다. 그는 부모를 떠나서 혼자 성실하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외롭게 지내고 있었던 것을 가족들은 전혀 몰랐다. 그가 떠나고 난 후에야 뒤늦게 알게 되었고 후회한들 소용이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오열을 하며 그 충격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할머니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지만 장례식장 입구에 발을 딛자마자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 부모는 기막힌 현실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친구들은 황당함에 멍하니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이러한 큰 아픔과 슬픔에 잠겨있는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사자는 물론 그 누구에게 탓을 돌리고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의 당사자는 사실 본인과 그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피해자이다. 자칫 잘못하면 주변사람들이 또다시 2차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 자살했으니 지옥에 갔다고 단정해서도 안된다. 정말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깊은 상처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할 것인가? 누구에게도 말하고 털어놓을 수 없는 자기만의 숱한 아픔들이 있었을 것이다. 남아있는 가족들의 엄청난 충격과 고통도 말로 다할 수 없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정죄할 수 없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오히려 가해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외롭게 이겨내며 왕따 문화의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했던 것이 너무도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가족은 물론 학교 직장 병원 경찰 법원 국가의 그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해결과 위로를 하지 못하고 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치유상담, 심리치료, 자살예방센터, 여러 관련기관과 교회들이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기가 쉽지 않다. 더 큰 아픔과 상처로 남아있는 가족들을 그냥 방치할 수 없다. 속수무책인 현실에서 그래도 이를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 그 아픔의 현장인 장례식장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 큰 아픔의 가해자가 아니라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현장으로 바꿀 수 있다. 염(입관)이 아닌 단장예식으로 가능하다.
본 투헤븐상조에서 이를 감당하고 있다. 가족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찬양과 말씀의 진실을 느끼며 감동을 한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화해한다. 새로운 보혈의 능력을 실감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상처에서 실제로 치유되는 현장이 된다. 이 모든 일들이 부활의 천국환송예식에서 일어난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는 단장예식이다.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 최고의 사랑을 실감하게 된다. 아버지 집을 사모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투헤븐상조를 통한 단장예식에서 구원의 완성과 살리는 목회현장이 되고 있기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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