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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경명예철학박사_다시보는 '인물탐구', 강서구의회 지현경 전 구의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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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2-19 15:07 조회3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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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뉴스 > 문화/예술

다시보는 '인물 탐구', 강서구의회 지현경 전 구의원 편

 “부러질망정 휘어지진 않겠다”

기사입력 2021-03-18 08:28 수정 2021-03-18 08:28 

 

2002년 1월, 강서구의회 지현경 의원(발산2동)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행정편의주의, 책임 떠넘기기를 강하게 꼬집었다. 지현경 의원은“오늘날 공직사회는 획일적으로 편협한 근무 환경 속에서 구민들의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며“공무원들은 때만 넘기면 그만이고, 시간만 지나면 잊어버리고, 년 수만 지나면 이동해 버리기 때문에 책임질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지현경 의원은 공무원들을 고체와 액체로 비유했다.“고체로 비유하면 자기 분야에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최고의 전문가요 碩學이지만 액체로 비유해 보면 다른 분야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石學”이라고 비유했다. 지 의원은 공무원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능력과 자질은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노력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면서“구민을 무섭게 여기고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지식과 자존심을 내세워 빈곤한 행정을 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부러질망정 휘어지진 않겠다”“나그네 섦음에서 이제 강서구에 영원히 둥지를 틀겠다”며 오늘도 칠순 나이를 극복하고 새벽바람을 헤치며 공을 차는 시인이자, 작곡가, 전) 열린 예절학교 교장이며, 호남향우회의 선각자! 지현경 전 강서구의회 의원을 만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회장님께서 지역사회를 위해 그동안 많은 일을 해오셨는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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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조기 축구를 하며 새벽을 뚫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축구를 한 다음 집에 와서 샤워하고 보통 때는 곧장 이곳 사무실로 나옵니다. 이곳은 내가 즐겨 찾는데 나만이 맘껏 쉴 수 있는 공간이며, 때론 회의장이고, 독서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 년 열두 달 문 닫은 일이 없어요. 모든 사람이 지나가다 들리는 주막 같은 곳이며, 막힌 문제를 해결하고 가는 해우소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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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서 음악 전문가는 아니지만, 호남 향우회가를 작사 작곡했습니다. 호남 향우회가는 내가 서울로 떠나올 때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던 말씀을 노랫말에 인용 했고요. 여기에 있는 책 중 좋은 글귀를 모아 완성한 것입니다.
 
호남 향후회가의 2절까지는 전라도, 경상도, 충정도가 됐든 똑같이 불러도 됩니다. 하지만 3절에는‘호남평야 정기 받아...’라는 노랫말이 나옵니다.
 
호남인만이 우리나라 말 약 3만 8천 가지 음색 음소를 발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남인은 발성이 좋고, 표현을 잘한다고 합니다. 좋은 재주와 능력을 가진 우리 호남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바라며, 아무리 쌓아도 흘러내리지 않은 그릇이 되도록 더욱 열심히 공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Q. 회장님께서는 전 강서구의회 의원, 전 강서구 호남 향우회 연합회장 등 다양한 명칭이 있는데 어떤 명칭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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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명칭은 좋아하지 않고 다방면에 활동하니까 특정한 명칭보다는 의원 할 때는 의원이 좋고, 향우회 할 때는 향우회가 좋고, 위치에 따라서 이야기하지 어떤 명칭 한 가지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Q.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된 활동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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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된 것은 당시 내가 의정활동 할 때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탓에 공무원사회가 부패했다고나 할까, 좀 모든 일이 잘못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의회에 들어가자마자 강서구청을 뒤집다시피 강성으로 의정활동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정이 안 되어 충돌도 많았고 의회가 네 번이나 중단되는 사태도 있었습니다. 강서구청 공무원들이 너무나 못하고 틀에 박힌 행정을 해서 저는 구민을 위해 강하게 시정요구 하니까 언쟁이 될 수밖에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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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내려온 권위주의 사상, 거기에 몸이 젖은 사람들이 틀에 박힌 행동으로 행정을 집행하니까 우리 의회가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본의 아니게 주동자가 돼서 구청과 계속 충돌했고요.
 
우리가 뽑은 우리 구청장, 특히 나와 같은 당 소속 구청장인데도 불구하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했습니다.
 
의정활동 4년 동안 내가 한 일도 참 많았습니다. 당시 강서구는 비만 오면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지만 의정활동 4년 안에 물난리 80~90%를 해결했습니다. 지역사회가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으니까 가능 했던 거죠. 당시 공무원들은 탁상행정을 하다 보니 지역 실정을 잘 파악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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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인천 상수도가 강서로 지나가는 것을 손도 못 대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원칙과 법대로 강서구에 보상하도록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강서구민이 잘 모르는 일, 공무원이 알고 있으면서 숨기는 일, 그런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럴때 마다 오직 구민을 위해 의원으로서 본분을 충실히 했다는 것을 보람되게 생각합니다.
 
Q. 호남 향우회를 설립하시고 향우가를 직접 작사·작곡도 하시는 등 애향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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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도 서울에 내가 올 때 시골에서 농촌후계자로 교육받고 있다가 도망을 왔어요. 당시 상황은 내가 꿈에 그리던 서울이 아니었어요. 시골보다 더 못했어요.
 
나는 서울에 올라와서 정말 성실하게 일했어요. 그런데 내 옆에는 항상 전라도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다녔어요.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전라도라는 출신 때문에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했어요.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내 후배들에게는 나와 같은 슬픔을 이어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호남 향우회를 만들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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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특히 토박이라는 사람들이 세력을 만들어서 텃새를 많이 부렸어요. 그래서 멱살 잡고 싸움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십년지기 절친한 친구가 되었지만요.
 
당시 강서에 있는 향우들이 참 못살아요. 예를 들어 홍수가 나서 떠내려가서 죽는 사람, 물에 빠져 죽는 사람, 집에 물이 찬 곳은 거의 호남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줄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봤는데 저 사람이 구청장이나 국회의원 해 먹으려고 꼼수 부린다고 도리어 핀잔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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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막말이 들어와도 내가 할 일만 묵묵히 했더니 처음에 나를 나쁘게 봤던 사람들도 5년, 10년 지나니까 점차 인정해 주더 군요.
 
당시 향우들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파출소에 가서도 웃통 벗고 경찰과 싸우고, 자기가 잘못해놓고도 큰소리치며 대들었어요. 못 사니까 악밖에 안 남았던 거죠.
 
그래서 나는 10년 동안 동네를 돌아다니면서“제발 그러지 말자! 배운 것도 부족하고, 돈도 없고, 빽도 없다. 우리가 가진 건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예의범절이니 절대 싸우지 말고, 깽판 부리지 말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호남향우회 체육대회를 6년간 100% 내가 다 지원했어요.
 
Q. 회장님 인생 중 가장 보람된 일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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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보람 중 하나가 자식 키워서 시집·장가보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자식을 한 명도 결혼시키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맨주먹으로 강서구에 기반을 잡고 살기까지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지역을 위해 환원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방자치가 생기기 전부터 동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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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로 하수도도 놓고, 길도 뚫고... 주민들은 팔짱만 끼고 구경만 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직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내 몸과 마음을 바쳤기 때문에요.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Q. 가장 힘든 시기가 있었다면 언제였으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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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하면서 힘든 일이 많이 있었죠, 첫째는 사회진출을 하려는 충분한 능력과 기반을 갖추었다 해도 학벌이 없어서 힘들었고, 할 수 있는데 인정을 못 받는 것, 돈은 노력 것 자기의 한계에서 그 위치에 따라서 벌면 되니까 억울한 것은 없는데 호남이라는 편견과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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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배운 것을 부모한테 원망할 순 없잖아요. 당시 호남의 정서는 농사지어서는 대학 보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집도 장남인 큰형님만 대학을 보냈어요. 못 배운 것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는 안 해요. 지금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책을 읽으며 내 맘껏 공부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은 절대 안 합니다. 부모님께 유언으로 받은 언약입니다.“객지에서 돈을 많이 벌면 목숨이 위험하다. 그러니까 그 위치에서 적당히 벌고 편하게 살아야 한다. 너무 돈을 많이 벌고 남 앞에 뻐기면 죽을 수 있어...”
 
Q. 회장님께서 앞으로 하고 싶으신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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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이라면 지금도 더 많은 활동을 해서 사회에 봉사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하는데 안 주잖아요. 사회는 인정을 안 해요.
 
나 혼자만 안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고, 내가 아무리 주어진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어도, 막말로 저 사람은 배우지도 못했으면서 뭘 한다고 떠드는 거야! 하며 무시하는 거에요.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호남 향우회 회관 건립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회관 건립은 10년 전에 시작해서 10년 동안 1억 3천만 원 모았어요. 또한, 이름은 안 밝힌 독지가가 1억 원을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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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회관 건립을 곧 추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회관 건립을 굳이 왜 하려고 하냐는 등 일부 향우들의 의견도 있는데, 사실 여기에 참 기록하기 어려운 말입니다만, 예전에는 호남사람들의 일 거수 일투족을 다 뒷조사 당했어요.
 
당해본 사람은 알지만, 내가 무슨 말을 좀 하려고 하면 공갈친다고 핀잔하고, 행사 시 현수막도 못 걸게 하고, 호남 향우회 회의장으로 동사무소 한번 빌려주었다고 담당 공무원이 경위서를 쓰고 쫓겨났어요. 호남향우회 자체를 못하게 핍박했습니다. 박정희 정부 때부터 민정당 전두환 정권까지 얼마나 많은 타격을 받았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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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믿겠지만, 내가 중앙대 행정대학원 회장으로 있을 때 수안보에서 세미나를 했는데 밤에 이곳까지 형사 7명이 운동장에 지키고 있을 정도였어요.
 
당시엔 호남 향우들 모임에는 사무실도 안 빌려 주었어요. 그래서 어떤 식이든 우리 사무실을 만들고 싶었고 만들어야 했어요. 그런 한이 맺혀 향우회 회관을 건립하려고 한 겁니다.
 
앞으로 나의 꿈은 훌륭한 후배를 키워서 우리 지역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떳떳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고, 우리 향우회가 그런 공간을 충실히 만들고 싶습니다.
 
Q. 호남향우회 회원과 강서구민께 인사 말씀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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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현경 전 강서구 호남향우연합회 회장
 
강서는 우리 향우들이 많으므로 항상 모범이 되는 행동과 본보기가 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이 모였지만 우리 향우들이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신다면 언젠가는 지역사회에서 가장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봉사하며 제2의 고향인 강서구의 발전을 위해 힘써 주시기 바라며,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강서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Q. 평소 존경하는 분이나 고마운 분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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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죠! 그중에서도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님입니다. 그분은 항상 친형님과 부모님처럼 가까이해요. 지금도 무슨 일만 있으면 서로 연락합니다. 그분은 선비에요. 항상 제가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술 마시며 그분과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장관님, 장관님이 하시는 쌍소리도 우리에게는 교육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분과는 나이 차가 많이 납니다. 현재 그분은 83세, 나는 예순아홉입니다.‘어르신들 말씀은 욕도 교육이다’는 것을 젊은이들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Q. 인생의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부지런하게 살면 굶어 죽지 않는다’입니다.
 
Q. 그 외 회장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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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험에서 본다면‘항상 정직하게 살면 누군가가 귀히 돕는다’입니다. 내가 정직하게 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의 손이 반드시 온다고 봅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도 성실하게 살다 보면 모두가 좋은 일이 생기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강서뉴스 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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